“조선족, 그들도 우리 민족이다” 연변 조선족 민족학교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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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26 11:49 조회2,013회 댓글0건본문
“조선족, 그들도 우리 민족이다” 연변 조선족 민족학교 방문기
<김재황 시교육청 민주인권교육센터 파견교사>
등록 : 2011/06/15
시교육청 민주인권교육센터는 사단법인 우리민족과 함께 연변의 조선족 학교를 돕기 위해 실사단을 구성하여 지난달 24일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 도문시를 방문했다. 조선족으로서 자긍심과 문화, 언어 등을 보존, 발전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조선족 민족학교는 안타깝게도 교육 인프라와 교재, 인력의 전문성 등이 부족하고, 최근 조선족 사회를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시교육청이 조선족 학교 지원사업의 내용으로 방과후 돌봄교실 설치, 심리치료 교육지원 등을 설정한 것은 시의적절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2시간 여 비행이 끝날 무렵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내기를 끝마친 논과 군데군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익숙한 마을들이 눈에 들어왔다. 출국장 밖으로 나오니 연길 공항은 한국의 지방 터미널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방문인데도 연길은 낯설지가 않았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간판의 글씨는 마치 어린 시절의 읍내를 연상케 하는 향수를 자아내고 있었다. 눈에 익은 간판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우리 동포가 그만큼 많이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과거를 흐뭇하게 반추만 하기에는 우리의 방문 목적이 갖고 있는 묵직함이 너무도 컸다.
일제의 침탈에서 나라를 되찾은 지 60년이 훨씬 넘었지만, 중국 연변에 흩어져 척박한 삶을 이어온 한인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어찌 여우에게만 해당되겠는가? 하지만, 이주 1세대의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은 이제 호사스러운 감상으로 치부될 정도로 조선족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현실이 이상을 지배하다’
그동안 시교육청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 및 북한주민 지원사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북관계의 냉각으로 교류 사업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힘들게 되어 부득이하게 기존 교류의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다.
바로 중국에서 민족교육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조선족 학교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족 학교의 실상을 확인하면서 단지 지원대상의 변화 차원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호혜적 협력의 가능성과 한 민족으로서의 애처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중국이 개방화되면서 조선족 가정의 부모들이 중국의 개발지역과 한국으로 돈을 벌려고 나가는 수가 늘어나면서 부모 없는 자녀들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던 연변의 도문시 제2소학교의 경우 한 부모, 또는 무(無) 부모 학생이 61%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최근 조선족 가족의 해체로 인해 학생들의 성격이 괴팍하고 생기가 없으며, 집에 대한 애착이 없이 PC방을 전전하는 게임 중독, 우울증 등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들이 너무도 많아졌다고 심각성을 토로하기도 했다. 더욱이 연변 지역의 경우 전문적인 상담 및 심리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가 부재하다시피 하여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용광로 닮은 조선족 학교 민족교육 의지
우리 실사단은 도문시 교육국 및 제2소학교, 제5중학교 관계자들과 긴밀한 소통을 시도하였다. 우선 소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돌봄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는 데에 모두 공감하여 제2소학교에 ‘행복의 집’이라고 명명한 돌봄교실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전남대 심리건강연구소(소장 오수성 교수)가 주도하고, 시교육청이 지원하는 형태로 예산의 범위에서 심리상담 전문가를 이번 여름방학 중에 도문시에 파견하여, 1주일 내외의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마치 교류의 시작이 일방적 지원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도문시 관계자들은 한국과 중국의 가교로서의 역할과 민족교육 및 문화의 교류 등에 있어 자신들이 강점이 있음을 강조하며, 향후 시교육청과 호혜적인 협력을 일구어내자는 제안을 했다.
실제로 조선족 학교에서는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 문화 및 역사에 대해 비중 있게 교육하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산실로서의 자긍심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북공정, 개혁개방 등 중국 정부의 일련의 정책들로 인해 조선족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학교의 민족교육에 대한 열의는 식지 않은 듯 보였다.
역사교육이 축소되고 서구식 삶이 장악한 우리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어쩌면 조선족 학교들의 고군분투는 찬찬히 음미하고 톺아볼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들도 우리 민족이다!”
얼마 전 연변 출신의 백청강이라는 청년이 한 방송사의 가요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로 등극한 적이 있다. 한국으로 간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9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는 백청강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노래를 통해 표출하고 해소했던 걸로 보인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한 백청강은 조선족 2세, 3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요 신화적 인물로 취급될만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특정한 인물의 능력과 행운이 모두의 것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성공한 백청강에 대한 박수와 더불어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는, 현재 연변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백청강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도 우리 민족이다.
<김재황 시교육청 민주인권교육센터 파견교사>
등록 : 2011/06/15
시교육청 민주인권교육센터는 사단법인 우리민족과 함께 연변의 조선족 학교를 돕기 위해 실사단을 구성하여 지난달 24일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 도문시를 방문했다. 조선족으로서 자긍심과 문화, 언어 등을 보존, 발전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조선족 민족학교는 안타깝게도 교육 인프라와 교재, 인력의 전문성 등이 부족하고, 최근 조선족 사회를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시교육청이 조선족 학교 지원사업의 내용으로 방과후 돌봄교실 설치, 심리치료 교육지원 등을 설정한 것은 시의적절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2시간 여 비행이 끝날 무렵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내기를 끝마친 논과 군데군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익숙한 마을들이 눈에 들어왔다. 출국장 밖으로 나오니 연길 공항은 한국의 지방 터미널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방문인데도 연길은 낯설지가 않았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간판의 글씨는 마치 어린 시절의 읍내를 연상케 하는 향수를 자아내고 있었다. 눈에 익은 간판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우리 동포가 그만큼 많이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과거를 흐뭇하게 반추만 하기에는 우리의 방문 목적이 갖고 있는 묵직함이 너무도 컸다.
일제의 침탈에서 나라를 되찾은 지 60년이 훨씬 넘었지만, 중국 연변에 흩어져 척박한 삶을 이어온 한인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어찌 여우에게만 해당되겠는가? 하지만, 이주 1세대의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은 이제 호사스러운 감상으로 치부될 정도로 조선족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현실이 이상을 지배하다’
그동안 시교육청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 및 북한주민 지원사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북관계의 냉각으로 교류 사업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힘들게 되어 부득이하게 기존 교류의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다.
바로 중국에서 민족교육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조선족 학교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족 학교의 실상을 확인하면서 단지 지원대상의 변화 차원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호혜적 협력의 가능성과 한 민족으로서의 애처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중국이 개방화되면서 조선족 가정의 부모들이 중국의 개발지역과 한국으로 돈을 벌려고 나가는 수가 늘어나면서 부모 없는 자녀들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던 연변의 도문시 제2소학교의 경우 한 부모, 또는 무(無) 부모 학생이 61%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최근 조선족 가족의 해체로 인해 학생들의 성격이 괴팍하고 생기가 없으며, 집에 대한 애착이 없이 PC방을 전전하는 게임 중독, 우울증 등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들이 너무도 많아졌다고 심각성을 토로하기도 했다. 더욱이 연변 지역의 경우 전문적인 상담 및 심리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가 부재하다시피 하여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용광로 닮은 조선족 학교 민족교육 의지
우리 실사단은 도문시 교육국 및 제2소학교, 제5중학교 관계자들과 긴밀한 소통을 시도하였다. 우선 소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돌봄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는 데에 모두 공감하여 제2소학교에 ‘행복의 집’이라고 명명한 돌봄교실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전남대 심리건강연구소(소장 오수성 교수)가 주도하고, 시교육청이 지원하는 형태로 예산의 범위에서 심리상담 전문가를 이번 여름방학 중에 도문시에 파견하여, 1주일 내외의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마치 교류의 시작이 일방적 지원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도문시 관계자들은 한국과 중국의 가교로서의 역할과 민족교육 및 문화의 교류 등에 있어 자신들이 강점이 있음을 강조하며, 향후 시교육청과 호혜적인 협력을 일구어내자는 제안을 했다.
실제로 조선족 학교에서는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 문화 및 역사에 대해 비중 있게 교육하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산실로서의 자긍심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북공정, 개혁개방 등 중국 정부의 일련의 정책들로 인해 조선족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학교의 민족교육에 대한 열의는 식지 않은 듯 보였다.
역사교육이 축소되고 서구식 삶이 장악한 우리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어쩌면 조선족 학교들의 고군분투는 찬찬히 음미하고 톺아볼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들도 우리 민족이다!”
얼마 전 연변 출신의 백청강이라는 청년이 한 방송사의 가요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로 등극한 적이 있다. 한국으로 간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9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는 백청강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노래를 통해 표출하고 해소했던 걸로 보인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한 백청강은 조선족 2세, 3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요 신화적 인물로 취급될만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특정한 인물의 능력과 행운이 모두의 것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성공한 백청강에 대한 박수와 더불어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는, 현재 연변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백청강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도 우리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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