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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전남지역 청소년 DMZ통일캠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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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연안 작성일16-11-05 22:24 조회2,9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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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전남지역 청소년 DMZ 통일캠프를 다녀와서
고흥고(1) 송연안

통일캠프를 가게 된 계기는 우선 아빠의 권유 때문이었다. 아빠의 군생활을 하였던 곳이 철원이고 앞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라며 나에게 추천을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평소 북한과 통일에 관한 관심이 별로 없었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오히려 이런 문제들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한번 이번기회에 조금이라도 알고가자라는 마음으로 통일캠프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첫째 날에는 강당에서 듣는 수업을 주로 하였다. 북한에 관한 내용과 근현대사의 내용을 자세히 알려 주셨다. 그렇지만 수업이 너무 어려웠고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을 잘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처음 만난 이들과 모둠활동을 하는 시간은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러나 만난 이들은 다행히도 모두 친절했기에 내 걱정과는 달리 모둠활동을 즐겁게 보냈었다.
둘째 날에는 새벽 5시 쯤에 일어나야 했다. 왜냐하면 그 날 일정이 새벽 6시 30분에 출발 해서 약 7시간을 달려 철원에 도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철원은 북한과 남한의 중간 지점으로 옛날 궁예가 수도를 이 곳 철원으로 정할 만큼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이며 이곳을 쟁탈하기 위한 수많은 우리 선조들의 희생이 깃들어있는 곳이라 하였다. 민간인통제구역을 넘어 지뢰밭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는 기분이 정말 묘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곳을 내가 직접 와봤다는 것이 너무 설레었기 때문이다. 평화전망대를 가는 길에 가이드와 함께하며 설명을 들었다. 김일성이 철원을 빼앗기고 대성통곡을 하였다는 김일성 고지, 아이스크림이 녹는 형상을 하였다고 이름 붙여진 아이스크림 고지 등을 볼 수 있었다. 철원 평화전망대에서는 비무장지대를 내려다보았다. 다음으로 옛 조선노동당의 당사건물인 노동당사를 버스 안에서 구경하였다.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하여 버스 안에서만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선생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게 되었다. 가이드께서는 이 건물이 ‘들어갔다 살아 나온 이가 없다’ 라는 말이 떠돌 만큼 잔학한 공간이었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나 후에 선생님께서 다시 설명을 정정해주셨다. 이 건물은 고문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당의 사무소로써 행정기관의 역할을 하였고, 고문실이라는 소문은 단지 우리나라 정부의 반공교육의 상징일 뿐이라고 하셨다. 그 때 첫째 날 강의 도중 인터넷에 나오는 것 에는 사실이 아닌 것들도 있다는 내용이 생각났었다. 다음 도착지인 백마고지 전적지에서는 백마고지와 위령탑을 보았다. 그 곳에서 분명 비무장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초록색 초소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구나 남북한의 초소 중 가장 가까운 거리는 고작 4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듣고 이 곳 상황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 대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백마고지에 얽힌 동족상잔의 애환을 들을 때는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그저 한국전쟁이 존재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지,  정확히 그 속에 실존했던 가슴 아픈 역사들은 전혀 몰랐었고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백마고지의 지휘관 중 큰 승리를 거두셨던 김종오 장군의 참모관이 박정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프게도 그 이유는 당시 전쟁 당사국들인 남한과 북한에는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이런 상태로는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감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전투를 할 수 있는 친일파들을 앞잡이로 내세웠다고 한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광복 이후의 기득세가 친일세력에게 몰렸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나라의 역사는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다음 숙소에 도착하여 밥을 먹고 타일에 평화 그림그리기, 리본에 통일 염원하는 글쓰기를 하였다.
다음 셋째 날 예정지인 임진각에서 어젯밤에 썼던 통일염원리본 묶기를 하였다, 또한 국군 포로들이 귀환하였다는 자유의 다리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물류운반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기차도 구경할 수 있었다. 기차에는 당시 총알 구멍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괜히 숙연해 졌었다. 그 후 도라산 전망대로 이동하였는데 그 곳에서는 군사분계선, 북한 지역을 볼 수 있었고, 북한 방송까지 생생히 들을 수 있어 너무 신기했다. 군인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셨는데, 북한에는 서울까지 공격할 수 있는 장비들이 배치되어 있다고 하며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금 남북관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고 하셨다. 다음에는 도라산역으로 이동하였다. 사람들이 없어 휑한 기차역은 정말 기분을 묘하게 했다. 언젠가 통일이 이루어져서 이 곳 도라산역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우리는 서울로 이동하여 마지막 예정지인 서대문 형무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1908년에 지어졌으며  유관순열사, 윤봉길의사, 등등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신 곳이다. 그렇지만 역사관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사진으로 빼곡히 채워진 방에 들어간 순간 그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천명의 애국지사들의 존재를 실감하였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며 희생하시면서 까지 이뤄 내신 지금이 너무 소중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자유가 너무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던 내가 너무 창피하였다. 사형장을 둘러보기 전 선생님께서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형장의 바깥과 안쪽에는 각각 미루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져 있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사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이 두 나무를 붙잡고 통곡을 하였다고 전해져 통곡의 미루나무라고도 불리 우는 이 두 나무는 사실 동시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흐른 세월만큼 두껍게 자란 바깥 나무와는 달리 사형장의 안쪽에 심어진 나무는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자국의 독립도 못 보고 원통하게 죽어간 애국지사들의 한이 너무나도 깊어 나무를 말라비틀어지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후 일정을 모두 마친 후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해단식을 가졌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길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또다시 모습을 바꿔서라도 반드시 과거의 과오가 반복된다고 하셨다. 캠프의 막바지에 들었던 그 말은 더욱 마음에 와닿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번 캠프를 통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갔다. 오직 시험을 위해서만 배우려는 생각으로 역사를 대했던 것과 그동안 우리나라에 너무 무관심했던 나의 태도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아무런 감흥 없이 살아왔던 이 나라가 과거의 우리 선조들의 수많은 희생이 서려 있는 매우 소중한 나라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통일에 대해서는 막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통일은 반드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며 과연 내가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항상 염두 해야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번 통일 캠프는 북한과 통일,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의미 있고 또 누구나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값진 시간들이었기에 내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남지역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2박3일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함께하며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따라서 이번 통일캠프는 앞으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캠프참가를 권유해주신 부모님, 캠프에서 만나 친구들, 그리고 캠프를 주최하시고 지원해 주신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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