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철수로 남북관계 '제로시대'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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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4-29 14:20 조회898회 댓글0건본문
연합뉴스 | 입력 2013.04.29 11:47 | 수정 2013.04.29 13:59
연락채널 모두 끊겨…1971년 이후 소통채널 전무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남측 인원이 29일 모두 철수하면 남북관계도 완전히 단절된다.
개성공단은 천안함 사건과 이어진 정부의 5·24조치,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남북관계의 여러 악재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공간을 지켜온 방패막이였다.
북한의 개성공단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도 지난 27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우리는 6·15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통행제한 조치와 정부의 남측 인원 완전 철수로 개성공단은 착공 이후 처음으로 남한 사람이 1명도 남지 않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정부가 단전과 단수조치까지 취하게 되면 개성공단에는 전등불빛마저 사라지며 사실상 공장만 남은 '폐공단'이 되고 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성공단의 가동이 멈췄다는 것은 남북간의 신뢰 수준이 밑바닥까지 추락했다는 것"이라며 "이 신뢰를 회복하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이 완전히 가동을 멈추면서 남북간의 소통채널도 더는 작동하지 않게 됐다.
공단에 체류하는 인원이 '제로(0)'가 되면서 그동안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연락을 주고받던 채널이 끊기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남북 간을 연결해온 유일한 연락채널이었던 남북 군사당국간 통신선을 차단한 바 있다.
1971년 8월 당시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해 그해 9월 20일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의사소통로의 필요성에 공감한 남북 양측은 이틀 뒤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전화 2회선을 개설해 첫 통화를 시작했다.
직통전화 개설 이후 적십자 회담이 본격화되면서 남북 적십자는 판문점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남북대화 시대를 열었다.
결국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던 1971년 9월 남북간 소통채널이 처음으로 이어졌지만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가동 중단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남북간 소통로의 부재로 사소한 오해와 충돌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이제 남북한이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이 완전히 단절됐다"며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남북 당국간에 회담도 할 수 있는데 이제 남북한 양쪽은 방송과 같은 스피커에 의존해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의 완전 철수로 남북한이 신뢰의 채널을 복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공단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당국간 회담 등이 불가피한데 이를 개최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소통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을출 연구교수는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민간단체 등의 역할을 키우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 정부의 의사를 북측에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출범 초기 회담이 없던 시기에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단체들의 방북을 통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이후에 정상회담까지 개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대그룹이라는 신뢰할만한 대기업이 남북한을 오가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5·24조치로 남북경협이 중단돼 민간의 역할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jy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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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채널 모두 끊겨…1971년 이후 소통채널 전무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남측 인원이 29일 모두 철수하면 남북관계도 완전히 단절된다.
개성공단은 천안함 사건과 이어진 정부의 5·24조치,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남북관계의 여러 악재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공간을 지켜온 방패막이였다.
북한의 개성공단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도 지난 27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우리는 6·15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통행제한 조치와 정부의 남측 인원 완전 철수로 개성공단은 착공 이후 처음으로 남한 사람이 1명도 남지 않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정부가 단전과 단수조치까지 취하게 되면 개성공단에는 전등불빛마저 사라지며 사실상 공장만 남은 '폐공단'이 되고 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성공단의 가동이 멈췄다는 것은 남북간의 신뢰 수준이 밑바닥까지 추락했다는 것"이라며 "이 신뢰를 회복하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이 완전히 가동을 멈추면서 남북간의 소통채널도 더는 작동하지 않게 됐다.
공단에 체류하는 인원이 '제로(0)'가 되면서 그동안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연락을 주고받던 채널이 끊기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남북 간을 연결해온 유일한 연락채널이었던 남북 군사당국간 통신선을 차단한 바 있다.
1971년 8월 당시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해 그해 9월 20일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의사소통로의 필요성에 공감한 남북 양측은 이틀 뒤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전화 2회선을 개설해 첫 통화를 시작했다.
직통전화 개설 이후 적십자 회담이 본격화되면서 남북 적십자는 판문점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남북대화 시대를 열었다.
결국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던 1971년 9월 남북간 소통채널이 처음으로 이어졌지만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가동 중단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남북간 소통로의 부재로 사소한 오해와 충돌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이제 남북한이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이 완전히 단절됐다"며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남북 당국간에 회담도 할 수 있는데 이제 남북한 양쪽은 방송과 같은 스피커에 의존해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의 완전 철수로 남북한이 신뢰의 채널을 복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공단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당국간 회담 등이 불가피한데 이를 개최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소통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을출 연구교수는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민간단체 등의 역할을 키우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 정부의 의사를 북측에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출범 초기 회담이 없던 시기에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단체들의 방북을 통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이후에 정상회담까지 개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대그룹이라는 신뢰할만한 대기업이 남북한을 오가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5·24조치로 남북경협이 중단돼 민간의 역할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jy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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